Header Ads Widget

혼돈의 시대, 내면의 평화를 찾아 떠나는 여정: '쇼펜하우어 인생수업' 독후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절망속에서 희망을 탐색한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흔히 '염세주의 철학자'로 불립니다. 그의 짧은 인생관을 담은 서한들과 방대한 메모, 그리고 그가 남긴 여러 저서들을 살펴보면, 그는 분명 극도의 비관론자였음이 드러납니다. 그는 세계와 그 안의 인간 군상을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하며 지적인 충족을 느꼈던 괴팍한 인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염세주의적 성향은 그의 삶의 궤적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이 빚어낸 비관주의

 

쇼펜하우어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존경하던 상인 아버지는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강에 투신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문학적 야심이 컸던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 이후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사교계에 화려하게 등장했고, 사춘기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햄릿에 비유할 정도로 깊은 불신을 품게 됩니다. 이처럼 그의 젊은 날은 사랑했기에 상처받고, 지적인 재능을 발휘할수록 세상의 혐오에 시달리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서른 한 살에 그는 자신의 철학적 주저이자 서양 근대철학의 진수로 평가받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를 출판하며 지식인으로서의 꿈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을 때, 강당을 가득 채우던 헤겔과 달리 그의 강의에는 겨우 다섯 명의 학생만이 참석하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심지어 1831년 베를린에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평소 "태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다. 만약 태어났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차선이다"라고 말하던 그는 자신의 염세주의 철학을 뒤로하고 베를린을 탈출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보였습니다. 반면 학생들 곁을 지키며 철학을 강론하던 헤겔은 콜레라에 전염되어 세상을 떠났고, 이 사건은 쇼펜하우어가 평생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철학을 강의하지 않게 됩니다.의 철학,그리고 '의지'의 발견


고통의 철학, 그리고 '의지'의 발견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고통스러운 삶 그 자체를 텍스트 삼아 고통을 철학적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입니다. 그는 인생은 고통이며, 이 고통은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집착을 버림으로써 고통의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이른바 '비관에 대한 비관'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본질을 '의지(Wille)'로 보았습니다. '의지'는 무한한 결핍에 시달리는 맹목적인 힘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이 욕망의 존재이며, 이 욕망이 끊임없이 고통을 야기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양 철학의 전통에서 이성을 감정과 욕망을 통제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과 달리, 쇼펜하우어는 이성이 단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며 기존의 관념을 전복시켰습니다.

 그의 의지 이론은 후대의 많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독일의 니체, 프랑스의 앙리 베르그송, 미국의 존 듀이와 윌리엄 제임스 등이 그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리하르트 바그너 또한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접한 것을 자신의 생애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회고했으며, 심지어 칼 포퍼는 자신의 책 이름을 짓는 데 쇼펜하우어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비관에 대한 비관이 던진 희망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아는 것은 '언어'에 불과하며, '인생'이라는 두 글자 뒤에 숨어 있는 욕망과 의지가 바로 실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표상을 고통으로 덧칠하고 권태로 변화시키는 주범은 세상이나 사회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절망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들려주는 절망은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의 몰락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잉태되고 태어나는 '위대한 절망'입니다. 새로운 나를 위해 현존하는 나의 절망이 희생되는 것이기에, 쇼펜하우어의 절망은 궁극적인 희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고통은 단순히 소멸해야만 끝나는 아픔이 아니라, 그 아픔 끝에 새 생명과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가치관이 탄생하는 과정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실존 자체를 철학의 목적이자 궁극적인 진리로 삼은 선구자였습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철학자들이 '철학을 위한 철학'에 몰두할 때, 쇼펜하우어만이 철학의 본질이자 구현인 '인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이룩한 문화, 문명, 기술, 법률, 정치 체계가 인간의 본질을 지워버리는 장면들을 목격하며 개인의 삶에서 시작된 절망이 궁극적인 완성에 도달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쇼펜하우어가 이야기한 '의지'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였습니다. 모든 생명은 살아남기를 소망하며, 쇼펜하우어는 이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우리 안에 깃든 욕망의 본질이라고 여겼습니다. 그의 비관론은 한 인간이 순수한 욕망으로서 세계에 남겨지기를 소원하는 모든 인간의 잠재된 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추구했던 욕망은 가장 순수한 의지였으며, 인간의 모든 활동은 욕망을 성취하고 싶어 하는 의지의 출현이라는 진리를 깨우쳐주려 했습니다.

  

오늘날, 쇼펜하우어를 다시 읽는 이유

 

쇼펜하우어가 세상을 떠난 지 1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목격했던 절망의 크기는 오늘날 더욱 확대된 것처럼 보입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는 인간에게 물질이 될 것을 강요하고, 그 속에서 생존의 가치를 찾으려는 젊은이들은 좌절과 억압, 공포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다시 한번 쇼펜하우어를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날카로운 언어들은 때로는 거칠고 표독스럽게 느껴지지만,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라는 사람밖에 없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긴 젊은이들에게는 이 험난한 시대를 헤쳐나갈 지워지지 않는 '표상'을 남겨줄 것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일평생 열한 권의 책을 썼고, 그중 여덟 권은 생전에 출판되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외에도 《여록과 보유》(Parerga und Paralipomena)와 같은 저서들은 '인생론' 등의 이름으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에게 삶의 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괴테를 비롯한 수많은 동시대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1만 페이지가 넘는 일기를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습니다. "인생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태어났다면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 차선이다"라고 말하고 다닌 사람치고는 그 어떤 철학자, 작가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까지 쇼펜하우어를 기억하고 그의 저서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는 이유는, 그가 삶의 고통을 철학으로 승화시킨 용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가 새벽의 무딘 단잠을 깨우듯, 실존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인생을 저주한 옛 철학자의 독설이 우리 안에 감춰진 열망과 투지를 일깨워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쇼펜하우어의 글

내가 살아온 날들을 글로 옮기려니, 평소보다 말이 더 길어질 듯합니다. 내가 배우고 연구하고 탐색한 철학이라는 학문은 직업이 아닙니다. 우연히 선택한 일도 아닙니다. 나는 타인의 권유로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내게 지시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내 안의 자유로운 의지로 이 일을 선택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편안하지도 않았습니다. 곳곳에서 장애물과 맞닥뜨렸고, 숨어 있는 함정에 빠져 험한 고초를 겪어왔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괴로웠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부유했습니다. 그에게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아버지는 내게 학문의 길에 들어선 것을 격려해 주셨지만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후광 덕에 청소년기에는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풍요로운 물질을 보장받았습니다. 남는 게 시간이라 종일 철학을 연구하고 마음껏 명상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모두 갖춰져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사색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부유한 아버지 덕택이었습니다.

세상 그 어느 왕도 나 같은 혜택을 누려보진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를 자신의 뒤를 이어 사업가로 만들려고 마음먹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나는 일생을 학자로 살겠다고 결심했고, 철학자가 되겠다는 공상에 빠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나의 미래를 결정짓지 말라고 소리쳤습니다. 내게 기대하지 말라고 선언했습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삶과 내가 원하는 삶은 다르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아버지처럼 사업가가 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습니다.

아버지는 충격이 크셨습니다. 평생 학자로 살겠다는 결심을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자기 생각이 가장 옳다고 믿는 분이셨습니다. 나처럼 본인의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당연히 나 역시 내 생각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증오하는 두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가 한동안 지속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나를 도와주셨습니다. 철학은 가난한 직업이라 아들이 고생할까 봐 두려우셨던 겁니다. 금전적으로 지원해주시면서도 아버지는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내가 마음을 바꿔 학문의 길을 포기하고 아버지 밑으로 들어오기를 말입니다. 결국,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해 철학을 포기하고 아버지께 사업을 배워 보기로 했습니다. 돈의 유혹은 뿌리치기가 정말 힘든 것입니다. 젊은 나는 돈과 학문 중에서 돈을 택했고, 2년간 아버지를 따라 세상을 여행하며 사업을 배웠습니다. 2년을 허비한 것이지만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유익하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당시엔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자괴감에 매 순간이 절망으로 가득 찬 번민의 시절이었지만 말입니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크나큰 충격을 이기지 못해 비통과 절망에 빠져 극도로 우울한 날들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나의 방황은 계속되었습니다. 다시 철학의 길로 돌아가는 것이 아버지를 배신하는 짓 같았습니다. 공부도 때가 있는데, 나는 꽤 멀리 뒤처진 느낌이었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나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편지를 썼습니다. 삶의 목적을 상실했으며, 헛되이 세월만 축내고 있고, 새롭게 시작할 의욕도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머

니는 그 편지를 지인이자 유명한 예술가인 페르노프 씨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분이 내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나의 지난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으며, 뒤늦게 철학의 길로 들어선 위대한 학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공부를 다시 시작해보라는 충고였습니다.

편지를 읽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상심과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던 내 안에서 새로운 열망이 피어났습니다. 나는 사업가를 포기하고 다시금 학문의 길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댓글 쓰기

0 댓글